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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들에관한 책

율하,진송 2010. 7. 6. 10:31


< 연구소 소식 >

저희 연구소 박석무이사장님의 저서 『조선의 의인들』 (역사의 땅 사상의 고향을 가다) 이 6월 초순 한길사에서 간행되었습니다.

2007~2008년 2년간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조선의 역사화 사상기행을 겸한 글이어서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한겨례 신문의 서편을 첨부하여 보내드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다산연구소 - 


 

조선을 떠받친 선비의 흔적을 더듬다
이황·김인후·한백겸·유형원…
대표적 24인 ‘사상의 맥’ 되짚어
한겨레
» 백사 이항복(왼쪽), 매천 황현(오른쪽).
〈조선의 의인들〉
박석무 지음·황헌만 사진/한길사·2만원

 

임진왜란 때 이조참판과 형조판서, 대사헌, 도승지를 거쳐 다섯 차례나 병조판서를 지내면서 무너진 조선을 떠받치고 재건한 일등공신 백사 이항복(1556~1618)에 대해 <조선왕조실록>은 이런 기록을 남겼다.

 

“평생 세력가에게 머리 숙이는 글은 짓지 않았고, 집에 들어오는 선물이나 기증품을 받은 적이 없어, 벼슬이 영의정에 올랐으나 집안이 가난한 선비 집안과 같았다.”

 

» 〈조선의 의인들〉

다산연구소 이사장이자 한국고전번역원 원장 박석무씨는 <조선의 의인들>에서 권율 장군의 사위이기도 했던 백사를 한음 이덕형, 서애 유성룡, 오리 이원익 등과 더불어 “한 시대를 구제한 분”이라며 “대표적인 조선의 의인이 바로 그였다”고 평했다.

 

전란 뒤 영의정에 오르고 오성 부원군에 봉해진 백사는 광해군이 이복형제를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서인하려 하자 한음과 함께 죽기를 각오하고 반대하다 삼수로 유배당해 결국 북청 유배지에서 죽었다. “백사가 63살로 세상을 떠나자 귀양지인 함경도 북청에서 선산이 있는 경기도 포천에 장사를 지낼 때까지 소식을 들은 백성들이 지위의 고하를 묻지 않고 모두 찾아와 울고 절하면서 그의 죽음을 슬퍼했고, 장사를 지낼 때는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따지지 않고 군·관·민이 모두 찾아와 통곡하면서 제물과 제문을 바치는 사람이 끊일 줄 몰랐다.”(신흠이 쓴 ‘오성 부원군 신도비명’)

경주 이씨 백사공파는 대한제국 말 이조판서 이계조와 그의 아들로 영의정이 된 이유원으로 이어졌고, 그의 후손이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에 당선됐으나 이승만에 반대해 사임한 성재 이시영이다. 이시영 바로 위 형이 이회영이고 그 위로 건영, 석영, 철영 등 형이 더 있었고 아래로 동생 호영이 있었다. 일제 침략으로 나라가 망하자 이들 6형제는 전 재산을 몽땅 정리해 가족과 함께 만주로 가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웠고 상하이 임시정부에 가담했으며 또 아나키스트가 돼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쳤다.

 

역사가 이덕일은 <이회영과 젊은 그들>에서 이회영과 함께 중국에서 활동했던 정화암(정현섭)이 자서전 <이 조국 어디로 갈 것인가>에서 당시를 회상한 한 구절을 이렇게 인용했다. “남개의 우당 이회영 집을 찾아갔더니 여전히 생활이 어려워 식구들의 참상은 말이 아니었다. 끼니도 못 잇고 굶은 채 누워 있었다.” 이덕일은 전 재산을 모두 독립운동에 바친 삼한갑족 출신 그 일족의 ‘집단 기획망명’을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로 어찌 다 기릴 수 있겠느냐고 했다. 아나키스트가 돼 “무장투쟁을 결심하고 상하이 황포강 부두에서 영국 선적의 남창호 제일 밑바닥 4등 선실에 자리를 잡던” 65살 노인 이회영과 그 형제들 대다수가 이역에서 객사했을 때 그의 선조 백사의 장례식 때처럼 몰려와 통곡하며 슬퍼한 사람들이나 있었을까.

 
고산 윤선도까지 이어지는 호남 문학과 학문의 개산조(開山組)라는 <표해록>의 저자 최부에서부터 퇴계와 율곡, 김인후, 한백겸, 유형원, 기정진, 이진상 등을 거쳐 나라가 망하자 저항하다 또는 자진해서 목숨을 버린 최익현과 이만도, 황현으로 이어지는 24인의 삶과 사상. 그 흔적들을 더듬어가는 <조선의 의인들>은 족보학에 밝다는 지은이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해 의인들과 그 사상의 맥을 간결 명료하게 짚어주면서 전통과 역사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왜 오늘의 지식인들은 고전과 전통에 그리도 약한 것인지. 그러니 높은 수준의 역사 창조가 어찌 가능하단 말인가. 우리 것만 알고 거기에만 빠지는 국수주의도 좋지 않지만, 밖의 것만 알고 우리 안을 모른다면 국적 없는 국제미아가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내 나라 내 강산을 노래하고 우리 옛 선조의 경륜과 의혼을 배워 우리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보해야 한다. 이것을 위한 일단의 작업이 ‘역사의 땅 사상의 고향’을 찾았던 긴긴 여정이었다.” 지은이는 이 작업을 위해 지난 2년간 24인의 생가와 묘소를 직접 살피고 행장을 재확인하면서 의미를 되새겼다. 20대이던 1960년대 후반 장성의 고산서원을 찾았을 때 세운 뜻을, 유신독재시절 감방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다산 정약용 공부 등 다난했던 성취와 인욕의 40여년 세월이 지난 뒤 마침내 이룬 것이다. 24인은 난세를 극복한 경세가, 성리학자, 실학자, 위정척사의 실천가, 문장가 등 몇 개의 범주로 나눠 묶을 수 있으나 서술순서는 그들의 탄생과 활동 시기를 중심으로 연대순에 따랐다.

 

“내가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다만 나라에서 선비를 양성한 지 500년인데, 나라가 망하는 날에 한 사람도 나라를 위해 죽어가는 사람이 없다면 어찌 통탄스럽지 않으리오.”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역사 회고하니 글자나 아는 사람 되기가 이렇게 어려운지.” 매천의 절명시들은 언제나 사람을 전율케 한다.

 

<조선의 의인들>은 한길사가 “지나치게 번역도서 비중이 높은 한국 출판계의 현주소를 반성하고, 국내 인문학 저술의 집필을 장려하며, 한국 인문학의 세계적인 위상을 높이기 위해” 시작한 야심찬 기획 ‘한길인문학문고-생각하는 사람’ 시리즈 제2권이다. 첫 책은 샹탈 무페 등 서구 정치철학자 5명과의 대화를 정리한 곽준혁 고려대 교수의 <경계와 편견을 넘어서>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출처 : 2010.06.04 (금)인터넷신문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