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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쇠와 위공(爲公)

율하,진송 2013. 12. 2. 16:05

헌쇠와 위공(爲公)
김 정 남 (언론인)

  ‘헌쇠’와 ‘위공(爲公)’은 각각 전 추모연대 의장 박중기와 실크로드학과 문명교류학을 개창(開創)하고 있는 정수일의 아호다. 아는 사람은 알고 있겠지만 금년 11월에는 두 개의 의미 있는 모임이 있었다. 1934년생으로 팔순을 맞은 헌쇠 박중기의 산수(傘壽)문집, 「헌쇠 80년」의 출판기념회(11월 5일)와 위공 정수일의 「실크로드 사전」과 「실크로드 도록」(육로편) 출간 및 산수를 기념하는 모임(11월 19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생일은 정수일이 하루 이르지만, 행사는 박중기의 그것이 2주 빨랐다. 두 모임 모두 그들을 존경하고 따르는 동료, 친지, 후학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스로 나서 행사를 일으켰으니, 그 모양이 아름다웠고 그 분위기가 시종 따뜻했다.

스스로 연탄재가 되어

  박중기의 ‘헌쇠’라는 아호는 그가 고철장사를 할 때 범하(凡下) 이돈명 선생이 지어준 것으로 장난기가 있어 보이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위아래 사람으로부터 더 친숙하게 불려졌다. 양질의 쇠를 얻으려면 선철만 가지고는 안되고 헌쇠가 꼭 반 이상 섞여야 한다는 깊은 뜻이 ‘헌쇠’에는 담겨있다.

  1974년 4월, 박중기가 다른 사건으로 집행유예선고를 받고 석방되던 날, 그의 오랜 동료 이수병과 김용원은 이른바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검거되어, 그 이듬해 4월 9일 처형되었다. 이로부터 박중기는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들, 특히 경기여고 물리 선생을 하던 김용원이 자기 대신 죽었다고 괴로워한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에서 브레히트의 화자는 죽은 친구들이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고 속삭일 때 “자신이 미워졌다”고 말한다. 박중기가 바로 그런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강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 아니었고, 살아남기 위해 비겁하지도 않았다.

  죽음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한참 뒤, 상처투성이의 지친 몸으로 박중기는 그들 가족 앞에 소리 없이 나타났다. 어느 해 겨울에는 백화점에서 동료의 아들에게 외투를 사 입혔고, 외식 한번 하지 못했던 그들에게 탕수육에 자장면을 사 먹였다. 대학에 합격했을 때는 입학금이 든 봉투를 그들의 손에 쥐어주었다. 아버지가 없이 자라는 아이들이 망연해하거나 방황할 때는 조용히 다가가 손을 잡아 주었다.

  어디 이들에게뿐이랴. 박중기는 60년대 이래 우리 시대가 짊어져야 할 무겁고 힘든 짐을 지고 묵묵히 자기 길을 걸었고, 그러면서도 항상 웃는 얼굴, 따뜻한 목소리와 함께 모든 사람들의 곁에 없는 듯 있었으며,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조용히 힘이 되어주었던 사람이다. 그는 연탄재처럼 자신을 태워 많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줬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있어 조금은 슬픔과 고난을 덜 수 있었고, 그가 있어서 위로받았으며, 그가 있어 행복했다. 그것이 「헌쇠 80년」이다.

나에게는 아직도 두 개의 꿈이 남아있습니다

  정수일은 1996년 11월 28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을 구형받았다. 그로부터 2주 뒤 1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2000년에 출감했다. 감옥에서 그는 약 2만 5천 매의 원고를 썼다. 검사는 사형을 구형했을지언정 학문을 귀히 여겨 감옥에서의 집필을 허가했고, 판사는 사형이라는 ‘인위조작적 유한’의 형을 ‘자연순환적 유한’의 형으로 바꿔주었다. 정수일에 관한 한, 대한민국의 검사와 판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정수일은 일찍부터 삶의 화두를 “시대의 소명에 따라 지성의 양식으로 겨레에 헌신한다”는 것으로 삼았다. 그의 학문과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다 여기에 닿아있다. 그는 동서문명의 대동맥인 실크로드가 중국까지 와서 멈춘 것으로 되어있는 통념을 깨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통념대로라면 한반도는 문명 세계와 동떨어진 곳이 되어 ‘세계 속의 한국’이 아니라 ‘세계 밖의 한국’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금년 8월 31일,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열린 ‘이스탄불∙경주 문화 엑스포’ 개막식에서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경주는 실크로드의 시작점이고, 이스탄불은 끝지점’이라고 선언했다. 마침내 통념이 깨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정수일은 실크로드학, 문명교류학이라는 학문의 초야(草野)에 ‘대한민국 정수일’이라는 푯말을 곳곳에 세워놓았다. 그의 저술 하나하나가 그러한 푯말에 다름 아니며 이번에 출간한 「실크로드 사전」과 「실크로드 도록」도 단순한 사전이나 도록이 아니라, 정수일의 80평생 학문적 천착과 삶의 화두가 담겨있는 ‘정수일표 문명교류학 사전이요 도록’이라고 말할 수 있다.

  11월 19일, 정수일은 자신에게는 아직도 두 개의 꿈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이 땅에서 문명교류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정립, 활짝 꽃피우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갈라진 민족이 하나 되는 남북의 통일이라는 것이다.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 필마단기로 엄청난 학문적 업적을 일구어냈지만, 할 일은 많고 갈 길은 아직도 멀다. 우리가 그의 만수무강을 진심으로 축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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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정남
· 언론인
· 前 평화신문 편집국장
· 前 민주일보 논설위원
· 前 대통령비서실 교문사회수석비서관
· 저서 : 『진실, 광장에 서다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
           『이 사람을 보라 -어둠의 시대를 밝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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