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다산연구소(글)

천주학쟁이와 종북쟁이

율하,진송 2013. 12. 2. 16:00

‘천주학쟁이’라는 호칭의 비극

  “한국의 ‘괴벨스’들에게 부치는 글”이라는 신문(「한겨레」 2013.11.29일 자) 기사를 읽다가, 인터넷에서 ‘괴벨스’를 검색해보니, 파울 요제프 괴벨스(1897〜1945)는 1933〜1945년까지 나치 독일 제국선전부 장관을 지내며, 미화·과장·단순화·딱지부치기·감정이입 등의 선전술책으로 독재권력 유지에 혈안이 되었던 사람으로 나옵니다. 신문 기사에는 “나에게 한 문장만 주면 누구든 감옥에 보낼 수 있다고” 괴벨스는 큰소리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정말 무서운 선전술로 수많은 반나치 세력들을 참혹하게 만들었던 사람임이 분명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종북쟁이’, 즉 종북주의자 들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종북’이라는 혐오스러운 단어 하나 때문에 국민의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이 크게 저해 받을 지경으로 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더구나 많은 언론들은 기회라도 잡았다는 듯, 사실에 대한 정확한 파악도 없이 종북이라면 나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정부를 비판하거나, 정부에 반대 입장이라도 지닌 사람이면, 호시탐탐 노리다가, 종북의 딱지를 씌워 매도하는 경향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1800년 6월 학자이자 개혁가이던 정조 대왕이 붕어하자, 개혁을 반대했고, 정조의 정치에 불만이 있던 세력들이 들고일어나 정권을 잡았고, 반대파들을 제거할 구실을 찾고 있었는데, 그 무렵 조선에는 서양에서 들어온 천주교라는 종교가 민간에 퍼지면서 보수적 논리에 반대하는 주장을 펴고 있었습니다. 그걸 구실로 삼아 보수파들은 개혁파들의 제거를 위해 선전술이 필요했는데, 괴벨스 같은 몇몇 선동가들이 천주교 신자들을 ‘천주학쟁이’라고 밀어붙이면서 그들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불행하게도 개혁파들의 일부 사람들이 실제로 ‘천주학쟁이’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주학쟁이’를 천주교로 몰아 탄압하고 죽이는 일이야 체제 수호를 위해서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양해할 수도 있지만, 천주교를 믿지 않고 이미 거기서 진즉 벗어난 사람들까지도, 자신들의 반대파이거나, 개혁적인 인물로 뒷날이 걱정되는 사람들까지를 ‘천주학쟁이’라고만 호칭되면 그냥 잡아다가 죽이거나 감옥에 넣거나 유배를 보내는 혹독한 탄압을 가했습니다.

  “서너 명 불여우 같은 자들이 모함하고 헐뜯고 짖어대어 끝내는 수괴로 극형을 받게 하였다.”(이가환묘지명)라는 다산의 주장처럼 당시의 조선 괴벨스들이 모함하여 이가환을 죽이는 과정에 대한 다산의 설명입니다. “체제공의 관작을 추탈하는 위원회를 조직하여 모두에게 직책을 주었는데, 감히 그 직책을 회피하는 사람이 있으면 곧바로 ‘천주학쟁이’라는 죄목으로 모함하여 사자나 호랑이처럼 으르렁대며 개나 양처럼 몰아대고 독촉을 했다.”(「죽대선생전」)라고 했듯이, 정조 치세의 최고 명정승이던 채제공까지 사후에 관작을 추탈하여 개혁파 세력을 깡그리 몰락시켰던 과정을 다산은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북한을 따르고 북한이 잘한다고 여기는 종북주의나 ‘종북쟁이’들, 그들이야 싫고 밉지만, 그들의 생각까지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의 조항도 없지만,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다고 종북쟁이로 매도하여 탄압하는 일은 참으로 맹랑한 일입니다. 다산도 천주학쟁이로 모함 받아 18년의 귀양살이를 했지만, 그는 결코 천주교 신자로 남아 있지 않았던 것도 역사적 사실입니다. 정부의 정책이 비판받지 않으려면 옳은 정책을 펴면 되는 것이고, 반대파를 탄압하려면 정확한 법률 적용이 요구되지, 종북쟁이다, 천주학쟁이다 라는 선전술로 탄압하는 일은 200년 전의 신유옥사와 차별되지 않아 가슴이 아플 뿐입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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