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연구소가 주최하고 실학박물관의 후원으로 실시한 2017년 실학기행(8.17~8.19)을 잘 다녀왔습니다.이 기회는 제가 35년전 다산을 알게 된 이후 여러번 벼르던 여행이었기에 저에게는 120% 만족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다산 연구소 박석무 이사장님, 연구소 김태희 소장님을 포함, 다산연구소 언니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다산이 살았던 18~19세기는 서구 열강국들이 문화와 문명등 전분야의 부흥기를 구가하던 시기였던 반면, 조선에서는 임진왜란, 정유재란 등 국난으로 전 국토와 백성의 삶이 피퍠해진 이후 100여년이 지나는 동안 백성들은 먹고 살기도 어려운 시대였음에도, 넑이 빠진 지배계층은 백성의 삶의 질은 도외시하고 , 성리학의 낡은 틀에 빠져서 공리공론에만 몰두! 관혼상제 등 이념적 논쟁만 일삼는 등 당파싸움의 회오리에 나라가 침몰해가던 상황이었지요.바로 이때, 의식 있는 천재 학자들은 나라와 백성을 실질적으로 구할 방법을 처절하게 염려하여, 유배지 등 절대고독의 여건에서 자기 희생을 통하여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책을 저술하였었지요. 그들이 추구하던 실사구시 학풍을 실학이라고 이해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아요.
저는 평범한 일반 백성의 하나로서 중단없이 숨가쁘게 다름박질쳐온 45년간의 현업에서 처음으로 손을 놓고 이제 막 퇴직한 시점에, 처음 시도한 이번 여행에 전현직 교수님들, 교장,교감님,학예연구관님,기자님들 등 평생동안 지성추구 직업 인재분들과 동행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하였고, 200여년전 이 땅에 실학을 발흥케한 천재 실학자들중 다산 정약용(남양주,수원 화성,강진) 성호 이익(안산), 반계 류형원(부안), 정약전(흑산도),윤선도(해남 녹우당)의 거주지 및 묘지등 그들의 삶의 흔적을 찾아보면서 보람있었으며, 그들의 생애와 사상, 남긴 행적을 보고 느껴, 우리의 삶을 반추해 볼 수 있어서 녹슨 제 뇌세포를 기름지게 만든 매우 유익하고 의미있는 여행이었네요..
이번 실학기행 기간중 제 마음에 가장 짠한 진동을 주었던 곳으로 다산 정약용이 유배 초기에 기거(1801.12이후 4년동안)하였던 강진의 집앞에 걸려있던 '사의재기'를 읽으며 다산의 뜻을 기려보고 싶습니다.
2017.8.20
율하와 진송 이재준 올림..
••[ 사의재기(四宜齋記) -정약용]••
사의재(四宜齋)라는 것은 내가 강진(康津)에 귀양가 살 때 거처하던 집이다.
생각은 마땅히 담백해야 하니 담백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맑게 해야 하고, 외모는 마땅히 장엄해야 하니 장엄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단정히 해야 하고, 말은 마땅히 적어야 하니 적지 않은 바가 있으면 빨리 그쳐야 하고, 움직임은 마땅히 무거워야 하니 무겁지 않음이 있으면 빨리 더디게 해야 한다.
이에 그 방에 이름을 붙여 ‘사의재(四宜齋)’라고 한다. 마땅하다[宜]라는 것은 의롭다[義]라는 것이니, 의로 제어함을 이른다. 연령이 많아짐을 생각할 때 뜻한 바 학업이 무너져 버린 것이 슬퍼진다. 스스로 반성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때는 가경(嘉慶 청 인종(淸仁宗)의 연호) 8년 (1803, 순조 3) 겨울 12월 신축일 초열흘임. 동짓날[南至日]이니, 갑자년(1804, 순조 4)이 시작되는 날이다. 이날《주역(周易)》건괘(乾卦)를 읽었다.
四宜齋記
四宜齋者。余康津謫居之室也。思宜澹。其有不澹。尙亟澄之。貌宜莊。其有不莊。尙亟凝之。言宜訒。其有不訒。尙亟止之。動宜重。其有不重。尙亟遲之。於是乎名其室曰四宜之齋。宜也者義也。義以制之也。念年齡之遒邁。悼志業之頹廢。冀以自省也。時嘉慶八年冬十一月辛丑初十日日南至之日。寔唯甲子歲之攸起也。是日讀乾卦。
다산이 살았던 18~19세기는 서구 열강국들이 문화와 문명등 전분야의 부흥기를 구가하던 시기였던 반면, 조선에서는 임진왜란, 정유재란 등 국난으로 전 국토와 백성의 삶이 피퍠해진 이후 100여년이 지나는 동안 백성들은 먹고 살기도 어려운 시대였음에도, 넑이 빠진 지배계층은 백성의 삶의 질은 도외시하고 , 성리학의 낡은 틀에 빠져서 공리공론에만 몰두! 관혼상제 등 이념적 논쟁만 일삼는 등 당파싸움의 회오리에 나라가 침몰해가던 상황이었지요.바로 이때, 의식 있는 천재 학자들은 나라와 백성을 실질적으로 구할 방법을 처절하게 염려하여, 유배지 등 절대고독의 여건에서 자기 희생을 통하여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책을 저술하였었지요. 그들이 추구하던 실사구시 학풍을 실학이라고 이해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아요.
저는 평범한 일반 백성의 하나로서 중단없이 숨가쁘게 다름박질쳐온 45년간의 현업에서 처음으로 손을 놓고 이제 막 퇴직한 시점에, 처음 시도한 이번 여행에 전현직 교수님들, 교장,교감님,학예연구관님,기자님들 등 평생동안 지성추구 직업 인재분들과 동행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하였고, 200여년전 이 땅에 실학을 발흥케한 천재 실학자들중 다산 정약용(남양주,수원 화성,강진) 성호 이익(안산), 반계 류형원(부안), 정약전(흑산도),윤선도(해남 녹우당)의 거주지 및 묘지등 그들의 삶의 흔적을 찾아보면서 보람있었으며, 그들의 생애와 사상, 남긴 행적을 보고 느껴, 우리의 삶을 반추해 볼 수 있어서 녹슨 제 뇌세포를 기름지게 만든 매우 유익하고 의미있는 여행이었네요..
이번 실학기행 기간중 제 마음에 가장 짠한 진동을 주었던 곳으로 다산 정약용이 유배 초기에 기거(1801.12이후 4년동안)하였던 강진의 집앞에 걸려있던 '사의재기'를 읽으며 다산의 뜻을 기려보고 싶습니다.
2017.8.20
율하와 진송 이재준 올림..
••[ 사의재기(四宜齋記) -정약용]••
사의재(四宜齋)라는 것은 내가 강진(康津)에 귀양가 살 때 거처하던 집이다.
생각은 마땅히 담백해야 하니 담백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맑게 해야 하고, 외모는 마땅히 장엄해야 하니 장엄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단정히 해야 하고, 말은 마땅히 적어야 하니 적지 않은 바가 있으면 빨리 그쳐야 하고, 움직임은 마땅히 무거워야 하니 무겁지 않음이 있으면 빨리 더디게 해야 한다.
이에 그 방에 이름을 붙여 ‘사의재(四宜齋)’라고 한다. 마땅하다[宜]라는 것은 의롭다[義]라는 것이니, 의로 제어함을 이른다. 연령이 많아짐을 생각할 때 뜻한 바 학업이 무너져 버린 것이 슬퍼진다. 스스로 반성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때는 가경(嘉慶 청 인종(淸仁宗)의 연호) 8년 (1803, 순조 3) 겨울 12월 신축일 초열흘임. 동짓날[南至日]이니, 갑자년(1804, 순조 4)이 시작되는 날이다. 이날《주역(周易)》건괘(乾卦)를 읽었다.
四宜齋記
四宜齋者。余康津謫居之室也。思宜澹。其有不澹。尙亟澄之。貌宜莊。其有不莊。尙亟凝之。言宜訒。其有不訒。尙亟止之。動宜重。其有不重。尙亟遲之。於是乎名其室曰四宜之齋。宜也者義也。義以制之也。念年齡之遒邁。悼志業之頹廢。冀以自省也。時嘉慶八年冬十一月辛丑初十日日南至之日。寔唯甲子歲之攸起也。是日讀乾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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