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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교수전 (강명관) - 다산연구소-

율하,진송 2014. 10. 2. 11:04

 

문공의 스승인 연우가 맹자에게 말씀을 여쭈니..

 

"웃자리에 있는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은 것이고,아래에 있는 소인의 덕은 풀과 같은 것으로서, 풀은 그 위에 바람이 불어오면 반드시 쓰러지기 마련이다. 이와 같이 아래에 있는 소인들은 위에 있는 군자의 덕화 여하에 따라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보기 드문 충직한 분들이 많으시다.

외사씨(外史氏)는 말한다. “어떤 그 교수는 학장이 되고, 어떤 그 교수는 총장이 되고, 어떤 그 교수는 정치인이 된다. 위원장도 되고, 장관도 되고, 사외이사도 된다. 다만 그 교수는 윗분이 시키는 대로 하는, 윗분에게 충성을 다하시는 분이다.

어떤가? 대한민국 국민이면 본보기로 삼아야 할 분이 아니신가?”

 

 

「그 교수전(傳)」 [강명관]

 

  그 교수의 이름은 알 수 없다. 굳이 알 필요도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성은 김 씨라 하기도 하고, 이 씨라 하기도 하고, 박 씨라 하기도 한다. 아니, 최 씨, 강 씨, 정 씨라고 하는 이도, 그 밖의 어떤 성씨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이름은 물론 성씨조차 명확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그’를 성처럼 붙여 그냥 ‘그 교수’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실 그 교수는 별난 사람이 아니다. 학생 교수 교직원을 막론하고 ‘그 교수’를 숱하게 만나보았을 것이다. 도대체 ‘그 교수’는 어떤 사람인가 
 
학생도 많이 모이고, 논문도 많이 내는데

  교수의 본업은 연구와 교육이지만, ‘그 교수’는 그쪽에는 아주 관심이 없다. 강의는 대충대충 하고, 일만 있으면 쉽게 휴강을 한다. 하지만 학점이 워낙 후하기에 학생들은 ‘그 교수’에게 쏠린다. ‘그 교수’는 대학원생을 많이 거느리기도 한다. 뭔가 좀 똑똑하다 싶으면, 좀 예쁘다 싶으면, 뭔가 이용해 먹을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싶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도학생으로 삼고 만다. 하지만 평소 연구라고는 해 본 적이 없으니, 논문 지도 따위는 하지 않는다. 논문은 원래 혼자서 쓰는 것이라면서 내팽개치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그 교수’ 자신이 논문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논문을 써야만 돈(연구비라고도 한다)을 준다고 대학이 으름장을 놓자, ‘그 교수’도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자신이 정한 일생의 연구 계획을 따라서 쓰는 것은 아니다. 절실한 연구목적 같은 것도 없다. 다만 바라느니 돈이다. ‘그 교수’는 논문을 적게 쓰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제자의 학위논문을 요약해서 학회지에 싣게 하고 자신의 이름을 공저자로 올린다. 그러면 1편 당 70%를 인정해 준다. 지도를 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수의 제자를 악착같이 두는 것은,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논문 편수를 늘리려는 목적도 겸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방법도 있다. 1편으로 쓸 논문을 3, 4편으로 쪼개 쓰거나, 아니면 제목을 바꾸어 달고 내용을 약간 고친 뒤 이 학회지 저 학회지에 투고하기도 한다. 논문이 심사과정에서 탈락될 것은 염려하여 학회의 임원이 되거나 편집위원이 되어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도 아니라면 자신의 논문을 심사할 사람을 알아내어 전화를 하기도 한다. 자신과 비슷한 무리를 모아 아예 학회를 하나 만들고 학회지를 내기도 한다. 이 학회지에 논문을 싣는 것은 여반장이다. 이런 이유로 ‘그 교수’는 연구는 전혀 하지 않아도 논문은 풍부할 수 있다. 연구 업적을 평가하면 늘 1등이다.

  ‘그 교수’는 기회가 닿는 대로 짐짓 학문의 진지함에 대해 근엄하게 읊조린다. 대학 바깥의 사람들에게 학자의 길은 수도승이 걷는 고행의 길과 같다고 말한다. 속내를 알 길이 없는 대학 밖의 사람들은, ‘그 교수’야말로 정말 참다운 학자로구나 하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렇게 논문을 많이 써서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하면서도 ‘그 교수’는 다른 활동도 많이 한다. 사실 ‘그 교수’는 연구실에 있는 시간보다는 바깥에서 돌아다니는 시간이 훨씬 많다. 자료를 검토하고 궁리하는 시간보다 전화통을 붙들고 있을 때가 훨씬 많다.

 
연구·교육보다 보직과 바깥활동에 열심

  학교 안에서는 어떻게 하면 보직이나 한자리할까 기웃거리고, 다음번에는 누가 총장이 될까 하고 살핀다. 때로는 자신이 총장이 될 생각을 품기도 한다. 실제 보직을 맡기도 하는데(아니 보직만 하는데), 그럴 때면 본래 직무보다는 자신을 임명해 준 사람에게 충성심을 나타내는 데 온 힘을 다 쏟는다. 그런 노력을 점잖은 보통 교수들은 흔히 ‘아첨’이라는 전문용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 교수’는 이른바 ‘사회봉사’도 열심히 한다. 뭔가 권력의 냄새가 나는 곳이면 부르지 않아도 가서 안면을 튼다. 출신지, 초․중․고등학교 동창 관계,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까지 동원하면서 자신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검색’한다. 뭔가 하나가 걸리면 그때부터 형님, 동생, 선배, 후배를 읊조리면서 십년지기가 된다.

  그 뿐만 아니다. 국가기관의 무슨 위원회에서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가서 평소 닦은 ‘옳습니다’ 신공을 발휘한다. 선거철이 되면 갑자기 이상한 단체를 만들어 ‘장’이 되고 ‘대표’가 되어 부지런히 쏘다니는 것은 물론이다. 갑자기 신문에 누구누구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면서 이름도 나고 사진도 난다. 그것을 동네방네 떠들며 선거가 끝나면 마치 한자리할 것처럼 설치고 다닌다. 이것이 우리의 ‘그 교수님’이 사는 방식이다.

 그 교수의 말과 행동을 보면 대개 보수로 보인다. 하지만 그 교수가 꼭 보수인 것만은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드물기는 하지만 어떨 때는 꽤나 진보적인 발언을 한다는 것이다. 또 지난 민주화 시절 ‘데모’도 좀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진보에서 보수가 된 것인가? 그건 또 아니라고 한다.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해방 이후 거의 모든 기간을 보수가 권력을 잡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대단히 높기 때문에 그교수가 보수 쪽에 선 것일 뿐이라고 한다. 앞으로 이른바 ‘진보세력’이 권력을 잡을 가능성이 90%쯤 된다면 그는 진보로 행세하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확하게 말해 그 교수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고 오직 자신의 이익,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무슨 벼슬을 한자리 하거나 그 자리를 이용해 돈벌이할 생각만 하는 ‘자기이익주의자’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는 말도 있다.

 

보수 같기도 진보 같기도, 실은 ‘자기이익주의자’

  ‘자기이익주의자’인 그 교수는 민족주의자이고 애국자이기도 하다. 예컨대 그는 광개토대왕의 넓은 영토와 장보고의 해상왕국에 감동하고, 한편으로 현재 삼성전자가 한국기업으로서 세계적인 기업이라는 사실(이 다국적기업을 ‘한국의 기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을 민족적 자랑거리로 여긴다. ‘미국의 기업’인 애플이 삼성전자를 제소한 것에 대해 마음이 아프기 짝이 없다. 그는 오갈 데 없는 민족주의자이고 애국자이지만, 한편으로 물 건너 있는 대국(大國)인 미국을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떤 교수가 그교수에게 미국을 비판하는 말을 했다가, 분노에 찬, 폭포수 같은 반론을 듣고 어이없어했다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그 교수는 미국을 사랑하지만, 같은 동포인 북한에 대해서는 무조건 ‘미친놈들’ 운운하면서 흥분한다. 또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종북’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한다. 물론 확인되지 않는 풍문일 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교수가 차근차근 이치를 따지면서 대화하는 것을 무척 꺼린다는 것이다. 특히 그 교수는 공개 석상에서는 평소 신념을 밝히는 법이 없다. 그 교수가 무게를 잔뜩 실어 권위 있는 어투로 말할 때도 있기는 하다. 그건 대개 자기의 말을 일방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는 대학원생 혹은 아직도 약간 순진한 학부생 앞에서다. 그 외에 그 교수의 무게 있는, 권위 있는 발언은 주로 그 교수가 아첨의 기술을 총동원해서 따낸 무슨 ‘장’을 맡았을 때다. 하지만 그 ‘장’을 그만두면 그런 권위 있는 말투는 사라지고 만다.

 

무식한 듯 영민한 듯, 다른 데 기웃거리느라 늘 바빠

  그 교수는 너무 바쁘다. 중요한 ‘사회활동’으로 늘 이곳저곳 기웃거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교수가 책을 읽거나 궁리하는 것을 본 사람은 드물다. 그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가면 그 교수는 늘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연구실을 둘러보면 사방에 책과 문서가 가득하다. 그 책들은 보통 사람들은 짐작이 가지 않는 어려운 제목을 달고 있다. 학교 밖의 사람들은 그 교수가 대단한 연구를 수행하는 줄로 안다. 하지만 그 책들은 20년 전 30년 전 젊은 시절 사들인 것이고 이후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것들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교수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 중에 그 교수가 의외로 무식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교수는 결코 무식하지 않고 영민하기 짝이 없다고 말하는 분도 있다. 그 분은, 그 교수가 노조의 파업을 엄단하는 것이 기업을 살리고 국가와 사회를 안정시키는 지름길임을, 핵발전소의 증설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4대강 사업’이 국토의 효율적 사용과 환경보호에 기여하는 중차대한 국가사업임을 조목조목 따지는 것을 듣고, 그 교수의 해박함과 영민함에 새삼 감탄해 마지않았다는 것이다.

  외사씨(外史氏)는 말한다. “어떤 그 교수는 학장이 되고, 어떤 그 교수는 총장이 되고, 어떤 그 교수는 정치인이 된다. 위원장도 되고, 장관도 되고, 사외이사도 된다. 다만 그 교수는 윗분이 시키는 대로 하는, 윗분에게 충성을 다하시는 분이다. 요즘 보기 드문 충직한 분이시다. 어떤가? 대한민국 국민이면 본보기로 삼아야 할 분이 아니신가?”

 

 

메일 내용

제 328 호
「그교수전(傳)」(下)
강 명 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그교수의 말과 행동을 보면 대개 보수로 보인다. 하지만 그교수가 꼭 보수인 것만은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드물기는 하지만 어떨 때는 꽤나 진보적인 발언을 한다는 것이다. 또 지난 민주화 시절 ‘데모’도 좀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진보에서 보수가 된 것인가? 그건 또 아니라고 한다.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해방 이후 거의 모든 기간을 보수가 권력을 잡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대단히 높기 때문에 그교수가 보수 쪽에 선 것일 뿐이라고 한다. 앞으로 이른바 ‘진보세력’이 권력을 잡을 가능성이 90%쯤 된다면 그는 진보로 행세하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확하게 말해 그교수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고 오직 자신의 이익,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무슨 벼슬을 한자리 하거나 그 자리를 이용해 돈벌이할 생각만 하는 ‘자기이익주의자’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는 말도 있다.

보수 같기도 진보 같기도, 실은 ‘자기이익주의자’

  ‘자기이익주의자’인 그교수는 민족주의자이고 애국자이기도 하다. 예컨대 그는 광개토대왕의 넓은 영토와 장보고의 해상왕국에 감동하고, 한편으로 현재 삼성전자가 한국기업으로서 세계적인 기업이라는 사실(이 다국적기업을 ‘한국의 기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을 민족적 자랑거리로 여긴다. ‘미국의 기업’인 애플이 삼성전자를 제소한 것에 대해 마음이 아프기 짝이 없다. 그는 오갈 데 없는 민족주의자이고 애국자이지만, 한편으로 물 건너 있는 대국(大國)인 미국을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떤 교수가 그교수에게 미국을 비판하는 말을 했다가, 분노에 찬, 폭포수 같은 반론을 듣고 어이없어했다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그교수는 미국을 사랑하지만, 같은 동포인 북한에 대해서는 무조건 ‘미친놈들’ 운운하면서 흥분한다. 또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종북’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한다. 물론 확인되지 않는 풍문일 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교수가 차근차근 이치를 따지면서 대화하는 것을 무척 꺼린다는 것이다. 특히 그교수는 공개 석상에서는 평소 신념을 밝히는 법이 없다. 그교수가 무게를 잔뜩 실어 권위 있는 어투로 말할 때도 있기는 하다. 그건 대개 자기의 말을 일방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는 대학원생 혹은 아직도 약간 순진한 학부생 앞에서다. 그 외에 그교수의 무게 있는, 권위 있는 발언은 주로 그교수가 아첨의 기술을 총동원해서 따낸 무슨 ‘장’을 맡았을 때다. 하지만 그 ‘장’을 그만두면 그런 권위 있는 말투는 사라지고 만다.

무식한 듯 영민한 듯, 다른 데 기웃거리느라 늘 바빠

  그교수는 너무 바쁘다. 중요한 ‘사회활동’으로 늘 이곳저곳 기웃거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교수가 책을 읽거나 궁리하는 것을 본 사람은 드물다. 그교수의 연구실을 찾아가면 그교수는 늘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연구실을 둘러보면 사방에 책과 문서가 가득하다. 그 책들은 보통 사람들은 짐작이 가지 않는 어려운 제목을 달고 있다. 학교 밖의 사람들은 그교수가 대단한 연구를 수행하는 줄로 안다. 하지만 그 책들은 20년 전 30년 전 젊은 시절 사들인 것이고 이후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것들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교수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 중에 그교수가 의외로 무식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교수는 결코 무식하지 않고 영민하기 짝이 없다고 말하는 분도 있다. 그분은, 그교수가 노조의 파업을 엄단하는 것이 기업을 살리고 국가와 사회를 안정시키는 지름길임을, 핵발전소의 증설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4대강 사업’이 국토의 효율적 사용과 환경보호에 기여하는 중차대한 국가사업임을 조목조목 따지는 것을 듣고, 그교수의 해박함과 영민함에 새삼 감탄해 마지않았다는 것이다.

  외사씨(外史氏)는 말한다. “어떤 그교수는 학장이 되고, 어떤 그교수는 총장이 되고, 어떤 그교수는 정치인이 된다. 위원장도 되고, 장관도 되고, 사외이사도 된다. 다만 그교수는 윗분이 시키는 대로 하는, 윗분에게 충성을 다하시는 분이다. 요즘 보기 드문 충직한 분이시다. 어떤가? 대한민국 국민이면 본보기로 삼아야 할 분이 아니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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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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